[친일파의 어제와 오늘]친일 왕족 이해승과 특급호텔 회장님

친일적폐청산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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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그랜드 힐튼 호텔. 이 특급호텔의 설립자는 이우영 회장이다.

이회장은 친일파 왕족으로 알려진 청풍군 이해승의 손자이다.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 친일파 후손의 재산이 버젓이 서있을 수 있었을까.


이해승은 조선의 왕실의 왕족으로서 일제로부터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인 ‘후작’ 작위를 받았다. 은사금으로 당시 168,000원을 받았고, 수십 만㎡의 토지도 불하 받았다. 그는 황국신민화 운동을 위해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조선귀족회 회장이 되어 일본의 전쟁 승리를 위해 거액의 국방 헌금을 헌납했다.

이해승은 조선의 왕족이면서도 민족을 배신한 민족반역자이다.


그는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일제의 대표적인 수탈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신탁하여 거액의 돈을 빌렸고, 이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조선 왕실의 친일파를 위해 일제가 직접 보증에 나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는 이해승이 부동산을 신탁한 후에도 국유지와 광업권 등을 제공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었다.


일제의 비호아래 승승장구하던 이해승도 광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친일파 청산을 위해 반민특위가 구성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만들어졌다. 이해승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기소되었지만 죄를 물을 수도, 재산을 몰수할 수 도 없었다. 반민특위가 설치 1년 2개월만에 와해되면서 풀려났고,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이해승의 아들 이완주는 광복 이전 사망했고 유일한 상속자이자 직계 후손은 어린 손자 이우영이었다.


이우영은 1957년부터 1998년까지 국가를 상대로 할아버지의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이어나갔다. 당시 사법부는 이해승이 소유했던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했고, 이 소송들은 대부분 이해승의 권리를 상속받은 이우영이 승소했다. 그렇게 친일 왕족 이해승의 부동산들은 하나 둘 손자인 이우영에게 넘어갔다. 이우영이 1957년부터 1998년까지 소송을 통해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크기인 약 269만평의 땅을 되찾았다. 이해성이 신탁했던 부동산의 79%.

이우영은 그렇게 되찾은 땅위에 특급호텔을 세웠다.


2006년 친일재산조사위가 출범했고 친일파 168명으로부터 1,300만㎡ 토지의 환수를 결정했다. 이우영에게도 친일파 이해승의 부동산 197만여㎡ 와 이우영이 제3자에게 매각한 부동산 매매 대금에 대한 부당 이득 환수 결정이 내려졌다. 이우영은 정부를 상대로 ‘국가 귀속 결정 취소 소송’을 진행했고, 귀속 결정된 부동산의 환수를 취소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또 다른 소송에서는 국가가 환수 청구한 필지의 0.0002%인, 4㎡ (약 1평)만 국가에 소유권 이전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60년 가까이 끌어온 정부와 친일파 후손의 재판... 그리고 국가가 환수한 고작 한 평의 땅...

국가가 이우영에게 최종 패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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