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어제와 오늘] 독립투사 뺨 때린 친일경찰 노덕술

친일적폐청산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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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직원록에는 ‘마쓰우라 히’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공로로 일제로부터 두 개의 훈장을 받았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또 세 개의 훈장을 받는다.

대표적인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의 이야기이다.


1899년 울산에서 태어나 자란 노덕술은 1920년 경상남도에 있는 순사교습소를 졸업한 뒤 경찰이 되었다. 울산경찰서 사법계 순사부장이 되었고 1924년에는 경부보, 1943년에는 경시, 1944년에는 수송보안과장까지 승진했다. 그가 이처럼 고속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가나 학생들을 잡아 들여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등 일제에 철저하게 부역했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준 충성심에 일제는 훈장으로 포상했다.


해방 직후 평양경찰서장이었던 노덕술은 시민들에게 붙잡혀 몇 달 간 구금되었다가 월남했고, 이듬해에는 미군정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임용되어 경찰 내의 반이승만 세력 숙청, 좌익분자 검거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독립 투사인 김원봉을 체포하고 뺨을 때리는 등 치욕을 주었다. 이승만은 이런 노덕술을 반공 투사라고 극찬했다.

반민특위에 의해 민족반역자로 검거령이 내려진 친일 경찰인데도, 미군정 경찰조직에서 빨갱이 잡는데 앞장서면서 하루아침에 친일고문경찰이 애국자로 변신한 것이다.


1949년 1월, 노덕술은 지명수배 끝에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 경찰이 아니라 반민특위 수사관에 의해 잡힌 것이다. 체포 당시 경찰 지프에 무장경관까지 대동하고 있었던 노덕술은 70만원에 달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제 시세로 1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셈이다.


체포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승만의 지시로 병보석으로 풀려나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어 경기도 경찰부 보안주임으로 영전한다.


이후 군에 장교로 입대하여 헌병 중령으로 변신한 노덕술은 육군범죄수사대 대장까지 승진하며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공수사 업무를 담당한다. 이 시기 이승만으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비롯하여 무공훈장 세 개를 받게 된다.


1956년 군에서 예편한 후 고향 울산으로 내려갔다가,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1968년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사망한다. 그의 나이 68세.



친일 경찰에서 대한민국 경찰로.. 국군 장교로.. 그리고 국회의원 후보까지..

삶의 마지막 순간.. 그는 다섯 개의 훈장을 바라보며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살았노라 회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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