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어제와 오늘]영화 속 밀정은 가슴에 총탄을 맞았고, 현실 속 밀정은 가슴에 금뱃지를 달았다

친일적폐청산
2020-02-27
조회수 973

내 몸에 일본놈들의 총알이 여섯개나 박혀있습니다. (중략)

내가 동지 셋을 팔았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들 제가 직접 뽑았습니다.

그 젊은 청춘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보냈는지!

그건! 죽음을 불사하는 항전의 거름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영화 ‘밀정’의 염석진 대장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가 처단 당하지만, 현실 속 밀정은 해방 후 국회의원까지 당선된다.

의열단의 탈을 쓴 밀정...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이종형이다.


이종형은 188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복역했다고 알려졌으나 본인의 주장일 뿐 증명된 사실은 없다.

1930년 만주로 건너간 그는 밀정 조직인 초공군사령부에 가담하여 의열단에 위장 가입한 뒤 밀정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종형은 초공군사령부의 고문 겸 군재판관에 취임하여 군경 지휘권까지 행사했다. 그는 이러한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중국 지린성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 수십명을 직접 체포하고 살해하거나 투옥 시키는 밀정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가 투옥 시킨 독립투사는 250명에 달하며, 그 중 17명은 사형판결을 받았다.

독립운동가 승진을 지린 강남공원에서 암살하고, 하얼빈에서 활동하던 만주 독립운동의 대모 남자현을 일제 경찰에 밀고하여 옥사하게 했다.


1941년 귀국한 뒤에는 조선총독부 경무부의 촉탁으로 활동하며 광복 시점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체포하도록 했다. 

이듬해에는 친일단체인 총진회를 조직하여 신사참배를 독려하는 활동을 했다.


악명 높은 밀정으로서 일제에 충성을 하던 이종형은 해방과 함께 철저한 극우반공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는 친일파에서 자칭 반공주의자들로 변신한 주변인들과 함께 극우반공신문인 ‘대동신문’을 창간하게 되는데, 이는 일제에 철저하게 복무하던 친일파가 해방 후 살아남기 위해 보여준 처절한 몸부림의 전형이었다.


대부분의 친일파가 해방 후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이종형의 변신도 일제의 앞잡이로 동족에게 악질적인 행위를 자행하던 자신의 친일 경력을 감추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 당시 이종형은 ‘대동신문’을 앞세워 정면 반대하였고, ‘반민법은 망민법’이라는 논리로 궐기대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반대에 나섰다.

이 같은 이종형의 행동에 이승만 정권은 국무총리를 보내 대회를 성원하고, 이종형을 반공투사라 추켜세웠다.


반민특위 활동에 끝까지 반대하던 이종형도 마침내 반민특위 특경대에 의해 검거된다.

 1949년 3월 29일 열린 이종형의 첫 공판에서, 만주에서 일제 밀정으로 활약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하고 학살한 내용의 기소문이 낭독 되었다. 이종형은 ‘만주에서 공산당을 때려 부순 애국자를 어째서 반민법정에서 재판하려 하는가’, ‘내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지 않고 내 손에 쇠고랑을 채워주다니!’ 하고 소란을 피웠다.


두 번째 공판이 열릴즈음 이승만의 비호 아래 반민특위가 습격 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친일파 처단을 위한 마지막 노력마저 무산되었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자 자유의 몸이 된 이종형은 그대로 정계에 뛰어 들었다. 더 이상 그를 억압할 아무런 제재도 없는 자유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1950년 5월 30일 선거에서 이종형은 이승만 지지 계열의 국민회 소속으로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영화속의 밀정은 가슴에 총탄을 맞고 투사에 의해 처단됐지만, 현실속의 밀정은 가슴에 빛나는 금뱃지를 달았다.



9 1